시멘크 컵케이크 - 노트이자 고백이자 회상이자 일기
-왜 비참한 강제노동자는 비참함을 말하기위해 더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가?
2011년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순간 곧바로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어떤 양심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군대를 가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맹세컨데, 군대나 평화, 전쟁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시골과 지방 도시에서 재미없는 학창 시절을 보낸 후 법적으로 성인이 되자 마자 뭐든 좋으니 남들 다 하는 게 아닌 대안적인 삶으로 몸이 기울었던 나에게, 병역거부란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그냥,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병역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1년 6개월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 받으면 합법적으로- 아니 불법적으로- 아니 합법적으로 법적인 군 복무 의무에서 면제된다. 그게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일반적인 실천 방식이었다.) 감옥에서 살다가 나오면 그만인 일 아닌가?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다. 사회에 영향을, 아니 악영향을 덜 끼치기 위해 실행할 수 있는 일. 물론 곧바로 감옥을 가진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입영 일자를 연기했다. 학업을 사유로 4년, 각종 시험을 핑계로 2년, 그 이후에는 입영일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방식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20대 남성은 병무청의 허가를 받아 단수 여권을 발급 받아 신청 후 출국할 수 있다. 입영일에 해외에 체류 중이라면 해외 여행을 사유로 입영 일자를 연기할 수 있다.) 약 4번 정도 더 입영 일자를 미뤘다. 그만큼 군대도 감옥도 가기 싫은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아무 단기 노동이나 전전했으며 동시에 거리와 무너져 가는 건물들 사이로 혁명과 투쟁의 기운을 맛보고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2018년 중순, 어김없이 입영영장이 날아왔고 이번에야 말로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감옥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너무 질질 끌어온 탓에 미래는 불안정해져 갔고 마침 함께 사회운동을 해왔던 사람들과도 여러 사유로 소원해져 (좌파, 운동권은 대내외적으로 많이 싸우고 다툰다. 물론 누군가 명백히 잘못한 하는 사건들도 있었지만 서로의 신념과 생각이 강력해 갈라지는 경우도 잦다.)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쯤이었다. 입영 일자로부터 일주일 전, 병무청에서 입영일자를 상기시켜주는 전화가 오길래 간략하게 병역을 거부할 것이며 입대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입영 일자 바로 전날에는 간단한 입장문 (병역거부자들은 기자회견이나 기타 등등 대외적인 발언을 통해 자신의 양심적 병역거부 사유를 소상히 밝혀왔다.)을 작성했고, 입영 당일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이를 업로드했다. 자 안녕 여러분 저는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이러저러합니다. 사진가답게 병역거부 선언문의 대부분을 사진으로 대체했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감옥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하지만 정말 진짜 진짜 진짜 진짜 공교롭게도 우연의 일치로 놀랍게도, 나의 입영일 당일 오전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넘겨 다시 심리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간 대부분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2004년의 대법원 판례’에 따라 유죄가 기본이었는데, 이러한 기존의 판례를 바꿔야 한다고 대법원이 선언한 것이다. 즉 다른 선택지 없이 병역거부자에게 감옥행을 선고하던 걸 멈추겠다는 이야기였다.
기존 양심적 병역거부의 절차와 전통과 내 예상과 계획대로라면 나는 병역거부 후 병무청이든 국방부든 검찰이든 하여간 국가기관으로부터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되고 재판을 받아야 했겠지만, 대법원 소식 때문인지 나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붕 뜬 상태로 인터넷 (주로 트위터를 통해 내게 직통으로 달린 글들) 악플을 보며 며칠 몇 개월을 보냈고, 그 해 여름과 겨울 헌법재판소는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가 없는 병역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통한 병역거부에 대한 무죄 선고를 내렸다.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될 거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기뻐하긴 했다. 기뻐해야 하는 게 맞았으니까. 인생 계획 다 꼬였지만 축하할 일은 맞았다. 아, 이대로라면 감옥에 들어갈 일은 없겠구나. 감옥에서 뭐할지 계획도 전부 세워뒀었는데!
내 계획은 엎어졌지만 그래도 수십년 간 징병제를 유지하며 그 거부자들을 가차없이 패죽이거나 감옥을 보냈던 반인권적인 사회가 조금은 나아졌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기뻐할 일이긴 했다. (실제로 누군가들은 나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진짜 아주 잠시, 국회에서 통과된 대체복무 법안은 국제 사회의 인권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쓰레기 같은 제도였다. 복무 기간은 현역병의 2배인 3년, 그리고 합숙, 무엇보다, 복무시설은 교도소나 구치소로 칭해지는 교정 시설, 즉 감옥이었다.
뭐에요? 이거? 맞아요? 나는 이러나 저러나 여전히 감옥에 가게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를 하기 위해선 대체역 심사위원회라는 국가기관을 거쳐 일련의 양심 심사 테스트 시험 진실게임 면접 편입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국가 공인 인증 양심을 가진 이만 할 수 있는 게 대체복무제도인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사진가로서의 기록과 공개 가능하며 문서화 가능한 사회 운동 기억을 기록화하여 자기소개서처럼 작성해 제출했고, 나아가 일종의 추천서 또는 보증서로 가족을 포함한 3명의 지인으로부터 내 양심에 대한 부가적 진술서를 받아 제출했다. 그리고는 약 6시간에 걸친 1:1 심층 양심 면접 과정과 2차례의 최종, 진짜 진짜 최종 양심 심사위원 면접 압박 과정을 거쳤다. 젠장 이런 면접과 인정 및 인증 같은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기 위해 대안적 삶을 추구해온 것이거늘. 하여간 어찌저찌 양심 심사에 통과한 나는, 2022년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대체복무역 편입자- 국가 공인 양심인간이 되었다. 이 인증 과정에서 나는 항상 진실만을 말한 것은 아니며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건 아니지만 일종의 가식과 위선이 새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면접과 심사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은 이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왜 우리 회사에 지망했습니까? 입사 후 포부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처럼.
하여간 이상주의의 날개를 일부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양심 심사 면접 과정에서 ‘모든 폭력에 반대하냐’ 라는 질문에 나는 예스라고 대답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이스라엘의 무단점령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의 저항세력과 하마스 등이 행하는 자신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이 설령 무력투쟁일지라도 이를 지지하므로 예스가 아닌 셈이고…… 또한 ‘대체복무를 성실하게 이행할 거냐’라는 질문에도 예스라고 대답했지만 아니 선택지가 이것 뿐인데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불성실한 사람이지만 대답은 정해져 있었고 나는 그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폭력을 싫어하고 경계하는 그런 단순한 사람이 아니거늘. 이에 대해 다시 솔직하고 당당하며 멋있게 대답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오! 아닙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2023년 11월 마침내 나는 병역의무의 해소를 위해 대체복무를 시작했고, 합숙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망가지고 일그러졌다. 우울과 불면으로 정신과에 다녀왔고 매일 밤 약을 먹지 않으면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외박과 휴가로 집에 나와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비해 밤에 자는 자연스러운 잠 외의 잠은 기가 막히게 찾아다녔다. 오전 강제노동을 마치고 1시간씩 반드시 낮잠을 잤고, 일하는 시간에도 가능하면 졸거나 몰래 누워있었으며 오후 강제노동이 끝난 후에는 아무 것도 하기 싫어 일부러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저녁 낮잠을 취했다. 잠과 꿈이 최고의 도피처였다. 꿈꿀 수 있는데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2018년, 병역거부를 선언했을 때 당연히 수많은 못된 말들도 있었지만 주변인과 모르는 사람들의 지지와 격려와 응원도 존재했다. 멋있다는 말, 존경스럽다는 말, 굳은 신념 어쩌구 저쩌구, 어쩌구 저쩌구의 말들. 대체복무를 시작하기 전에도 친구들은 나에게 힘을 주려고 애를 썼다. 나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진심으로 미안하게 되었지만, 나는 그런 위인이 아니었다. 대체복무를 하는 여기는 고고한 신념과 이상과 철학이 지탱하는 곳이 아니다. 또한 나는 무의미한 강제노동 속에서 견고히 스스로를 지킬 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다. 무의미한 노동이 영혼을 조금씩 판매하는 일이라면 무의미한 의무는 영혼을 마비시키는 일이며 이는 영혼이 없는 내게도 적용된다. 나는 이곳에서 완전히 붕괴되었고… 그저, 꿈을 꾸고 싶다. 추상적 의미에서의 꿈 말고, 뇌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선물인 진정한 꿈. 그러므로 침대와 이불과 베개만이 온전히 내 것이다.
(사실은 아니다, 대체복무대원의 침대와 이불과 베개는 지급물품이 아니므로 법무부의 소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