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erRhythm - notes



건물주와 지주들은 건물과 토지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려왔다. 그들이 사용해온 대표적 방식은 오래된 동네와 전체 상권을 허물고 높은 빌딩 숲을 조성하거나 자신이 세를 주던 건물을 재건축하거나 그냥 모든 것을 통째로 강탈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쫓겨난 사람들, 그러니까 오래된 동네와 상권에서 살아가고 장사하던 사람들과 자그마한 건물이나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잃고 빚더미에 오르든 거리에 내몰려 굶어 죽든 그들의 알 바는 아니었다.

쫓겨난 이들은,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르지만 세간의 시선처럼 모두가 '가난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들은 단지 정직할 뿐이었다. 이들의 정직함을 보며 건물주는 군침을 흘렸고 곧바로 돈 벌 각을 쟀다. 어떤 건물주는 2년의 상가 임대차 계약을 맺으며 “내쫓지 않을 테니 장사나 열심히 하라”고 말한 뒤 8개월 만에 가게를 모두 비우라 통보했고, 어떤 건물주는 장사가 잘되던 맛집의 사장을 내쫓고 자신이 직접 그 가게를 운영했다. 법 또한 정직한 이들의 편은 아니었다. 법원의 판결은 건물에 대한 강제집행으로 이어졌다. 강제집행을 위해 용역 직원들이 고용되어 투입되었다.

고용된 용역 직원들은,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르지만 대부분 덩치가 크고 건장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는 경호업에 종사했고, 어떤 이는 선배가 야 용돈이나 벌자하고 불러서 그냥 나와본 철부지 체육대학교 학생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을 용역 깡패라 불렀다. 서있는 것만으로도 위화감을 조성하고 가게와 집을 부수고 허물고 사람들을 밀치고 엎어치고 메치니 깡패라는 호칭이 자연스레 붙었다.

좋든 싫든 싸움은 시작된다. 사장님은 투사가 된다. 삶의 터전은 점거 농성장으로 변한다. 그렇게 투쟁의 막이 오르고 법적/물리적/경제적 긴장감이 조성된다!

그 무렵... 갈 곳 없이 떠돌던 보잘 것 없는 청년들이 스멀스멀 등장한다!
(결코 영웅적 등장이 아니었으며 사실 모두가 청년인 것도 아니었다.)

등장한 청년들은, 각자의 사정은 다 다르지만 주로 '운동권'으로 불리거나 하여간 대충 그 주변부에 있는 예술가 어쩌구 기타 등등이었다. 어떤 이는 정치인의 꿈을, 어떤 이는 예술가의 꿈을, 어떤 이는 뭐랄까 이러저러 대안적인 삶을 꿈꾸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하여간 이들에게는 사회적 약자로 몰린 누군가와 연대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동시에 청년들은 점거 농성장이 된 식당과 카페를 안식처로 삼았다. 점거된 공간의 의미와 용도는 지속적으로 팽창했다. 그 공간은 놀이터이자 학교, 공연장이나 갤러리가 되었으며 때로는 틴더처럼 사람과 사랑을 찾기 위한 장소가 되었다. 모두의 집이 되기도 했다. 이곳은 물리적으로는 사회에 속하지만 언뜻 보기에는 사회 테두리 바깥에 존재하는, 사회의 통제와 시선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난 자율적 해방 공간이었다. 스멀스멀 더 많은 청년들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청년들은 투사가 된 사장님과 함께 했다. 삶의 터전이자 점거 농성장이자 우리의 해방 공간인 이곳을 지키자! 때로는 마초성을 뽐내며 용역 깡패와 몸을 부대꼈고, 음악가의 공연이 열리는 날이면 춤을 추며 서로의 몸을 부대꼈다. 누군가는 공간을 보다 평등하게 유지하고자 자율적인 규칙을 세우기도 했다. 작지만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이 보였고 그 틈엔 항상 음악과 춤과 사랑이 자리했다.

점거 농성과 투쟁은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했다.
승리던 패배던, 투쟁이 끝나면 해방 공간은 다시 사회로 편입되었다. 청년들은 다시 갈 곳 없이 떠돌며 스멀스멀 사라진다. 일시적인 해방 공간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며, 또는 열릴 일이 없기를 바라며.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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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리듬 COUNTERRHYT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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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동지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우리에겐 뒤섞여 춤을 추던 기념사진만이 남았다.

우리는 왜 모였을까. 사상의 전파를 위해, 조직화를 위해, 신념의 실천을 위해, 기타 칠 공간을 찾기 위해, 술을 마시기 위해, 재개발 악개발을 막기 위해, 악을 쓰기 위해, 아드레날린의 폭발, 노동의 지겨움, 순간의 분노와 슬픔, 또는 그냥 속한 곳이 없어 거리와 네트워크를 떠돌다 발이 닿아서. 연대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엔 음악과 춤에 대한 기억만이 남았다. 실패한 투쟁에 혁명은 없었지만 적어도 기분은 좋았다. 시간이 지나며 해방공간은 공터가 되고 아파트가 들어선다. 뜨거웠던 기억은 사진첩에 처박혀 백업 전까지 영원한 잠에 빠져든다. 한때 우리가 역사라 믿었던 혁명적 순간의 고귀한 기념사진!

공간이 사라지자 일시적으로 고용되었던 적들도 사라진다. 남겨진 우리는 서로 싸운다. 노선의 차이, 정치적 견해의 다름, 사소한 말다툼, 만남과 헤어짐, 각종 비윤리적 행위 및 때때로 범죄. 흩어진 동지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우리에겐 뒤섞여 춤을 추던 기념사진만이 남았다.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옆 나라 청년들의 수십 년 전 구호는, 연대를 구할 수 없는 자에게는 고립뿐이라는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가!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모두 찢긴 현재로서는 아무런 파악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때가 되어서야 혁명의 가능성은 되돌아온다. 영원한 동지가 없다면 영원한 적 또한 없을 터, 유한한 관계의 한계는 무한한 연대의 가능성으로 뒤바뀐다. 우리가 흩어졌다는 사실은 이제 위안이 된다.

나가며

카운터리듬 시리즈는 점거 농성장=일시적 해방 공간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장면과 용역 깡패와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장면이 비슷하게 얽힌다는 기분에 매료되며 시작되었다. 대충 엮어두었던 사진은 진세영 기획자가 제안한 부산 공간 힘에서의 전시 《너무 총체적인 문제라서 혁명 말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여를 준비하며 구체화되었고 끝을 맺을 수 있었다. 글의 앞 뭉텅이는 작업을 정리하며 새로 작성되었고 뒷 뭉텅이는 전시 참여 당시 작성하여 첨부한 작업 노트의 전문이다.